“성공한 입양인은 소수… 국제 입양 조장 말아야”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ㆍ제인 정 트렌카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펴내

제인 정 트렌카(40)는 세계적인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역겹다”고 했다. 졸리는 제3세계 국가 출신 아이들을 여러 명 입양했는데, 이를 주선한 입양기관이 캄보디아 등지에서 아이를 ‘밀매’해 서구의 양부모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트렌카는 “그런 방식으로 입양해놓고 ‘내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자랑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인 트렌카가 편집한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뿌리의집)이 최근 나왔다. 트렌카는 ‘인종간 입양’된 필자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인종간 입양이란 입양가정과 입양아동의 인종이 다른 경우를 뜻한다. 북미의 인디언이나 흑인 가정 아동이 백인 가정에, 한국·베트남·나이지리아 출신 아동이 북미·유럽·호주의 백인 가정에 편입돼 성장하는 사례가 많다.

책은 결코 ‘다문화적 유토피아의 희망’이 될 수 없는 인종간 입양의 현실을 드러낸다. 입양인들은 새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과거를 잊으라고 강요당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스스로를 검열한다.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20대에 한국으로 ‘귀향’한 트렌카는 “입양인의 현실을 바로 알면 국제입양을 조장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백인 가정이 유색 인종 아이를 입양하는 배경에는 비기독교도인 제3세계 아이들을 ‘구원’하겠다는 종교적·식민주의적 발상이 담겨 있다. 어떤 입양기관은 돈벌이를 위해 ‘아동 무역’을 한다.

몇몇 유명인사들이 공개입양을 하면서 밝혔듯, 최근 한국에서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행복’이라는 말로 칭송된다. 그러나 트렌카는 입양이 어떤 경우에도 최우선의 해결책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모든 아이에겐 생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있으므로, 국가와 사회는 입양을 장려하기보다는 생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끔 돕는 시스템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싱글맘’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편견을 없애는 것이 입양을 장려하는 것보다 시급하다.

트렌카 역시 입양인이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 만에 언니와 함께 미국 미네소타의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

친모는 술만 마시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남편으로부터 딸들을 보호하길 원했다. 어머니는 딸들이 태평양을 건너자마자 줄기차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양부모들이 몰래 편지를 버렸기 때문이다.

트렌카의 양부모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들은 백인 소년을 입양하려 했으나, 입양을 기다리는 백인 소년은 드물어 대기 시간이 길었다. 그들에게 아시아 소녀는 ‘싸고 빠른’ 입양 방법이었다. 양부모는 트렌카의 남자친구가 아시아계라는 사실을 못마땅해했고, 베트남 참전군인이었던 트렌카의 친구 아버지는 자신의 집에 “아시아인 출입금지”를 명했다. 16살의 트렌카는 양부모가 버린 친모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트렌카는 양부모 몰래 친모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18살이 되던 해, 트렌카는 집을 떠났고 이후론 양부모와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영아 일시보호소에서 위탁가정이나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한국도 서서히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트렌카는 다문화 사회가 미국에선 백인 우월주의, 한국에선 가부장주의에 물들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입양인의 관점에서 다문화 사회는 백인 가족에 통합되는 겁니다. 한국의 다문화 사회는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걸 말하죠. 가부장주의 아래, 남편 없는 미혼모의 아이는 통합에서 배제됩니다.”

1995년 한국에 온 트렌카는 친모를 만났고, 친모가 세상을 뜬 지금도 한국에 산다. ‘노마드’란 말이 유행어가 된 시대에 굳이 고향을 찾은 이유를 묻자 “입양인의 가슴에는 구멍이 있다. 귀향은 그 구멍을 메우는 과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트랜스내셔널’한 삶이 ‘쿨’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입양인들은 언제나 ‘심리적인 향수병’을 앓는다.

요즘 언론에선 프랑스의 한국계 입양인이 화제다. 새 내각의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사회당)과 장관이 유력시되는 장 뱅상 플라세(녹색당)가 그 주인공이다. 이런 현상이 새롭지는 않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토비 도슨 같이 ‘성공’한 입양인들은 언제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트렌카는 이 같은 입양인은 소수이며,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인 입양인들이 더 많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와 언론이 한국의 싱글맘과 국제 입양을 조장하는 상황을 직시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평등, 노동자의 권리, 사회 정의를 보는 렌즈를 갖게 될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펠르랭과 플라세)이 속한 사회당, 녹색당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겠죠.”

트렌카는 경험에 바탕을 둔 두 편의 에세이 <피의 언어> <덧없는 환영>을 내 미국에서 호평받았다.

<피의 언어>는 2004년 번역됐고, <덧없는 환영> 역시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트렌카는 더 이상 문학적인 글은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작가는 한을 팔아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데, 2권의 책으로 트렌카의 한은 풀린 것일까.

트렌카는 이제 싱글맘과 입양인의 실태를 알리는 보고서를 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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