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국 사회와 화해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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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의 날’ 만든 주역 제인 정 트렌카 TRACK 대표
“이제는 한국 사회와 화해하고 싶어요”
생후 6개월에 미국으로…고등학교 때 생모 존재 알고 서신 왕래
‘피의 언어’ 등 자전소설로 입양의 상처 드러내며 대중의 관심 촉구
▲ 지난 2009년 TRACK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벌인 해외입양 반대 캠페인.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질문을 던지며 해외입양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해외 입양의 역사를 드러내고 이와 함께 생모의 고통을 얘기하고 그리고 이 문제는 바로 미혼모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이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요즘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관심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있다.”

▲ 장철영 기자

2006년 ‘입양의 날’로 정부가 제정한 5월 11일이 올해엔 좀 특별했다. 한편에서는 ‘싱글맘의 날’ 제정이란 상반된 개념의 기념행사가 열린 것. 입양을 우선순위에 두기보다는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들의 처지를 먼저 이해하고 이들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더 급하지 않으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 액션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바로 ‘싱글맘의 날’ 제정을 처음으로 제안한 제인 정 트렌카(39·사진)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가 있다.

생모의 첫 마디 “아이 러브 유”
감동 영원히 잊지 못할 것

사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가 아니었다. 일약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자전소설 ‘피의 언어’에도 나타나지만, 그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바로 위 네 살 된 그의 언니와 생후 6개월 된 그를 부득이하게 미국으로 입양 보내야 했다. 전처가 낳은 두 딸이 있는 아버지에게 재가해 그를 포함해 딸만 셋을 낳자 늘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우니 딸 둘을 입양 보내라고 엄마를 괴롭혔고, 심지어 갓난아기인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엄마로서는 딸들의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입양’이란 힘든 결정을 했지만 이후 ‘제인’이란 인형을 등에 업고 딸들이 떠난 공항을 전전하며 자식을 애타게 찾는 등 거의 실성한 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딸들의 입양을 주선한 입양 기관을 찾아가 양부모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해 드디어 딸들의 미국 주소를 알게 된 이후론 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집 우편함에서 한국어로 쓰인 생모의 편지를 발견하고부터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양부모는 생모의 편지를 감춰왔던 것. 이쯤 되면 왜 그가 이끄는 단체명에 ‘진실’과 ‘화해’라는 두 단어가 키워드로 들어가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에게 가장 상처가 됐던 말은 “너의 생모가 입양을 결정했다”는 것. 그는 “입양은 시민권에 관련된 문제이고, 국가가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입양을 촉진시켰다면 입양인 당사자의 인권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분명히 말한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입양인이 자신의 기록을 찾는 과정을 지원하고 이에 대한 사실을 바로잡아 진실을 드러내고 이들 해외 입양인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때 비로소 입양인들과 한국 사회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엄마의 편지를 발견한 이후 1988년부터 10여 년간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엄마의 존재가 그동안 내 삶 속엔 존재하지 않았기에 참 비현실적이었다. 엄마와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을 때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영어를 못하고 난 한국어를 못했지만 전화 통화 내내 엄마는 번갈아 이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경아(당시 호적에 남아있던 그의 한국명) 사랑해’ ‘경아야, 아이 러브 유’라고. 엄마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계속 괴로웠을 것이다.”

생모 존재 인정 않는 양부모와 절연
한국에 정착해 시민운동가로 변신

엄마와의 만남과 이후 엄마의 죽음은 이제까지의 그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자신의 근거지인 미네소타에서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하고 양부모와 언니를 초청했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양부모와의 절연을 결심했다. “양부모님이 한국 사람과 한국 엄마를 ‘인간’으로 인정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는 달랐다. 언니 역시 ‘입양인’이기에 생모에 대해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전적으로 그의 권리라는 것이다. 이후 4개월 예정으로 방문했던 5년 전의 한국행은 결국 정착으로 이어졌다.

“생모와의 만남이 내 인생을 변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해 배웠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엔 내게 급한 일이 별로 없었다. 엄마의 죽음 때문에 한국과 관련해 내 삶이 끝나기 전에 더 중요한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고국 정착 이면엔 동양 여성으로 서양인들 틈에 살면서 느껴야 했던 강박관념도 한몫 했다.

“여기선 마음이 안정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얼굴이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사실이 특히 그렇다. 미국 사회에선 동양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고, 그래서 강간 시도도 많다. 내 경우도 백인 스토커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아직 감옥에 있긴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이곳에선 성폭행 걱정 없이 다른 여자들 뒤에 숨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안도감을 준다.”
그는 정착 초기 연합뉴스에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하다가 올 가을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주요 관심사는 여성·아동 관련 복지정책. 2009년엔 미국에서 또 하나의 자전소설 ‘Fugitive Visions’를 펴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떠돌아다닌다는 맥락에서 ‘변주되는 희망’ 정도로 번역될 듯 싶은데, 내년쯤 국내 출간을 목표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작업 중이다.

“산문과 시가 섞인 일종의 회상록 형식이다. 타의에 의해 미국으로 ‘도망’갔던 내가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입양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는 형식이다. 입양인들이 국적을 다시 회복하고 친가족을 만나는 것이 일견 행복해 보이긴 하지만 다시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2007년 TRACK 결성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다. 해외 입양인 출신 5명이 모인 모임의 리더가 그의 친구였기 때문. 덴마크에 입양됐던 친구는 현재는 박사과정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자연스레 그가 모임의 구심점이 됐다. 이 과정 중에 “한국에서의 중요한 일”로 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바로 미혼모 문제였다. 입양아 90%가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혼모에 관련된 뚜렷한 사회적 움직임이나 커뮤니티가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로 다가왔다.

“미혼모 시설에서 나의 ‘과거’를 봤다”

“서울에 사는 입양인들이 애란원에 가서 미혼모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 속에 입양인들은 그 옛날 자신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미혼모들은 미래 자신의 아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이 혼자 힘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위대한 선택이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런 여성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란 문제가 대두됐다. 이후 양육 미혼모들이 뿌리의집을 빈번히 방문해 입양인 모임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모임은 어린이날,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기념일을 서로 가족처럼 축하해주는 이벤트와 파티로 발전했다. 그러면서 온라인상에 미혼 양육모들의 커뮤니티 ‘미스 맘마미아’가 만들어졌고, 이후 이것이 ‘한국미혼모가족협회’란 오프라인 모임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싱글맘의 날’이 제정돼 11일 그동안 같이 활동해왔던 이들과 함께 국제 콘퍼런스를 열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TRACK과 미혼모가족협회 회원 각 100여 명이 서로 왕래하며 ‘따로 또 같이’ 연대 중이다.

“아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생부들을 법정에 세우자”

“앞으로 우리들은 매해 싱글맘의 날마다 사회인식을 바꾸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한편 해외 입양 금지와 미혼모 지원을 골자로 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재의 출생신고제를 출생등록제로 바꾸는 새로운 운동도 기획하고 있다.

핏줄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선 입양 부모가 아이를 ‘친생자’로 등록하곤 하는데 장차 이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이 또한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태어났는데도 출생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며 1년여를 버티다 보면 그동안 아이는 사회적으로 ‘실종’되는 것 아닌가. 유럽에선 의사가 아이 출생 후 36시간 내에 출생신고를 동사무소에 보고하는 출생등록제를 실시한다고 알고 있다. 이처럼 제3자가 아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보고하게 되면 그 아이의 과거에 대해 그 누가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정서를 감안해 ‘입양 아동’이란 사실을 입양인 본인, 친부모는 알 수 있으나 공식 서류에는 드러내지 않는, 그런 이중 방식을 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와 TRACK은 내년 싱글맘의 날엔 자신의 아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생부들을 법정에 세우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벌일 것도 생각 중이다. 한편으론 미국 뉴욕의 한 대학 교수인 김호수 박사에게 아이를 입양 보낸 60대 여성에 대한 심층 인터뷰 프로젝트를 맡겨 “입양을 통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깨지고 고통 받는가”를 학문적으로 방증해낼 계획이다.

우리 사회 한편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 제인 정 트렌카 대표와의 오랜 얘기를 끝내고 뿌리의집을 나오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제인 등이 벌이는 일련의 노력을 통해 입양 당사자뿐만 아니라 생모의 목소리까지 담아낸 ‘입양백서’가 나온다면 우리 사회는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과 죄책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까. “왜 나를 버려야만 했어요?”란 입양인들의 절박한 질문에 이젠 우리가 진실되게 답할 때다.

*한국말이 서툰 제인 정 트렌카 TRACK 대표를 위해 해외 입양인을 위한 비영리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 김도현 원장이 인터뷰 진행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1134호 [사람들] (201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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