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다 올께”

해외입양인, 말걸기] ‘또 다른’ 이산가족의 추석 소원

입양인. 상당수의 한국인에게는 낯선 단어일 것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세기가 훌쩍 넘는 긴 입양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이지만 ‘입양’은 입양 보내는 부모, 입양하는 부모, 입양되는 아이, 모두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입양 보낸 수십만 명의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됐다. 더 이상 ‘아이(입양아)’가 아닌 이들은 스스로를 ‘입양인’이라고 부른다. 특히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졌던 20만 명의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방출됐던 나라인 ‘한국’을 향해 질문한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은 어떤 의미였냐고.

또 항변한다. 한국은 자신들을 내보냄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입양인’들이 존재하는 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오히려 입양, 입양인의 문제는 입양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앞으로 한국사회가 계속 가져가야할 과제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입양의 날'(5월11일)을 즈음해 입양인들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기사를 게재하는 등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 입양인들에게 입양의 문제는 연례 행사 차원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다. 또 정작 입양 문제에 있어 당사자인 이들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소외돼 있다. 한국사회와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입양인들이 <프레시안>을 소통 창구로 삼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다. 앞으로 부정기적으로 입양인들의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내가 2004년 가을 인제대학교에서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배운 한국어가 “갔다 올께” 였다. 나의 룸메이트는 “한국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갔다올께” 라는 말을 기숙사 방과 급식 식당 사이 혹은 수업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곧 보다 떠남이 길어질 경우에 있어서도 돌아오는 것이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추석이 그러했다. 나는 추석 때 학생들이 집에 감으로써 기숙사 전체가 텅텅 비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그 후 서울로 이사를 왔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가 텅 비고, 대신 집으로 가는 도로들이 꽉꽉 들어차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면서 단순히 어떤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좋은 예로 이번 추석을 앞두고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다. 금강산의 한 호텔에서 한국전쟁 이후 떨어져 있었던 100여 가구가 상봉한다. 이 재상봉은 크나큰 행복을 안겨주는 시간이 될 터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과 상봉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추석은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그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매년 나이가 들고 몸은 약해져 감에 따라 가족과의 만남이 살아 생전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 생각할지도 모른다.

▲ 올해 추석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첫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올해 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된 이들 중에는 최근 수해가 나면서 북한으로부터 임진강에서 떠내려온 6구의 시신 그리고 4-5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북한 남자 아이가 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아이의 신원은 확인된 바 없으나 “남한에서의 옷차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신원과 출신을 알 수 없는 아이가 홀로 강에서 떠내려오는 것은 성경의 모세를 연상하게 한다. 모세 역시 집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 이와 같이 어디론가 흘러가서 이번 추석 때 자신의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된 한국인들 중에는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들도 포함된다. 그들은 바구니에 넣어서 강가에 띄워 보내어지지는 않았지만, 비행기에 실어서 하늘로 띄워 보내어졌다.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남한에서의 옷차림이 아니었으며 우리는 스스로의 신원이나 출신지역 역시 모른다. 따라서 추석에는 같은 처지의 입양인들끼리 모여서 보내곤 한다. 때론 친절한 이들이 한국의 추석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즉,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껴보라고 전통음식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고 한복은 어떻게 입어야 하며 명절 때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놀이를 하고 노는지, 윗사람들께 절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입양인들은 방송을 통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장에서 눈물이 가득한 어르신들이 절을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때론 수업에서 절 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대부분 백인 가정에서 자라난 우리들이 그러한 지식을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입양기관을 통해서 취합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입양인들이 가족과 재상봉할 가능성은 2.7 퍼센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는가?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가족과 재상봉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낮을 것이다. 역설적인 점은 남한과 입양인들이 보내어진 서구국가들은 우방이라는 점이다. 즉, 국경을 넘나들어 자유롭게 왕래하며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입양인들은 현재 돌아갈 집이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북한과 남한의 가족 상봉은 여러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재까지도 매년 1000명 이상의 아동이 서구의 국가, 그 중에서도 대부분 미국으로 보내어지는 해외입양 역시 국가간의 정치적인 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북한과 맺는 정치적 관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나는 올해 추석, 나의 입양인 친구들이 그들의 가족과 재상봉할 수 있기를 빈다. 또한 나는 해외입양이 편의에 의한 미봉책이 아닌, 진정한 마지막 수단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이 한국의 중요한 명절에 남북한 이산가족 100여 가구의 재상봉뿐 아니라, 그 만큼의 입양인들이 재상봉하는 것을 보고 싶다.

우리는 떠났다. 이제는 우리가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왜냐면 나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돌아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제인 정 트렌카 작가, 입양인

A Chuseok Wish

One of the first phrases I learned in Korean language, at the Inje University program for adult adoptees in Kimhae in the fall of 2004, was 갔다올게. “Because returning,” my roommate said, “is very important for Korean people.”

I learned 갔다올게 in the context of going back and forth from our dormitory room to a classroom or the cafeteria. But I soon learned about the importance of returning from longer trips. That Chuseok, I saw the whole dormitory empty as students went to their hometowns, and in subsequent Chuseok holidays, after I had moved to Seoul, I watched the city empty out and the roads to the countryside fill up.

But I also learned while living in Korea that it is not just the return to a place that is important, but being able to return to one’s family. For instance, this Chuseok holiday, South and North Korea are planning to reunite, at a hotel, 100 family members who have been separated since the Korean War. For those who are scheduled to be reunited this Chuseok, this will be a time of great joy. But for those who are still waiting to be reunited with relatives on the other side of the border, Chuseok will again be a time of longing, when people think about their first families and wonder if they will ever be reunited with their relatives, who grow older and frailer every year.

Among the others who will not be with their families this year, and who have the Korean people’s sympathies, will be the six South Korean victims of the recent Imjin River flood and one North Korean boy, aged four or five, whose body had drifted downriver along with the floodwaters. News reports said that Seoul did not know the name of the boy or where he came from, but that his clothes were “not the kind worn in the South.”

A lone, nameless child of unknown origins floating down a river — it is the image of the Biblical Moses, a lost child, an orphan. Another group of Koreans who drifted away, and who will not return to their families this Chuseok are also the international adoptees, who were sent away not in a baskets floating in water, but in airplanes floating in the sky.

When overseas adoptees return, the clothes we wear are not the kind worn in South Korea, and we do not know our names or where we came from. So our Chuseok holidays are spent among other adoptees. Kind Korean people often arrange some kind of program to show us what Chuseok is — a family holiday — and how to cook traditional food, how to wear hanbok, how to sing a traditional Korean song or play a traditional Korean game, and how to bow to elders.

We adoptees may have seen Koreans tearfully bowing to their elders from television broadcasts of North-South family reunions, and we may have learned how to bow in a class, but the chance that we, most of whom were raised in white families, will be able to ever use that kind of cultural knowledge is slim. Who will we bow to, when according to government data gathered from the adoption agencies, our odds of being reunited with our families is 2.7 percent?

Although the people from North Korea also have a slim chance of being reunited, the irony is that South Korea and the countries the adoptees were sent to are supposedly allies, and we supposedly have the freedom to communicate across borders with each other. But the system of international adoption has constructed a situation in which we have no one to communicate with, and no hometown to return to.

The North Korean reunifications of families are, of course, filled with political meaning, and it is time for South Korea to also see that the adoption program to the West that continues at the rate of over 1,000 children sent abroad every year, mostly to the U.S., is also influenced by political relationships, albeit much a different one than that with North Korea.

This year, my Chuseok wish is for all my adopted friends is to be reunited with their families in their hometowns. My wish is for international adoption to truly be a last-resort measure for Korea, not a measure of convenience that supports the international adoption lobby. want to challeng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reunite not just 100 South and North Korean families, but also 100 adoptees on this most important of Korean family holidays. We have gone; now let us come back. Because, I have been told, returning is important to Korean people.

About jjtre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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