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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디아스포라’를 끝내는 법 [2009.05.13. 제760호]
 
▣ 안수찬 
 
[표지이야기] 입양인 단체의 강력한 요청에 입양특례법 개정 움직임… 
방대한 민법 함께 고쳐야 하는 난제
 
 
쿠데타 성공 직후인 1961년, 박정희 정권은 고아입양특례법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미 이뤄지고 있던 해외 입양을 ‘정비’하려는 목적이었다. 한국 여성과 미군 병사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또는 전쟁고아에 대한 해외 입양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최초 제정 때의 입양특례법은 나라가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들을 ‘더 원활하게’ 국외로 내보내려는 성격이 짙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어린이 디아스포라(이산)’의 시작이다. 이후 입양특례법은 9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입양을 보는 법률의 시선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맡아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를 내주는’ 입양특례법의 성긴 그물코는 여전히 넓고 크다.

 

 
 
» 국외입양인연대(ASK) 회원과 뿌리의 집 회원들이 지난해 5월5일 ‘입양 없는 날’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20만 명의 아이를 돈을 받고 해외에 보낸 것을 상징해 비행기 모형 위에 동전 2천 개를 놓았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정보 통합 관리 수준에 머물 듯

 

정부는 오는 9월 정기 국회에서 현행 입양특례법을 개정하겠다는 태도다. 지난 2월에는 관련 공청회도 열었다. 여기에는 1970∼80년대에 해외 가정에 보내졌다가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관련 단체의 효시는 ‘해외입양인연대’(GOAL)다. 입양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에 돌아온 해외 입양인들의 정착과 뿌리 찾기를 도왔다. 2004년에는 더 정치적인 모임이 만들어졌다. ‘국외입양인연대’(ASK)는 해외 입양 완전 폐지를 목표로 내건다.

2007년에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이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과거 해외 입양 과정의 전모를 한국 정부의 책임 아래 ‘진실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라가 방조하고 민간 기관이 주도한 해외 입양의 ‘그늘진 실체’를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최근 법안 개정 흐름은 해외 입양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떠밀린 측면이 크다. 정부로선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진전은 더디다. 정부는 특례법 개정 내용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아직 정부안을 내놓지 못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허남순 한림대 교수 등에게 의뢰했던 ‘입양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연구’ 최종 보고서를 받았다. <한겨레21>이 입수해 살펴보니, 연구팀의 제안은 “국내·국외 입양 업무를 조정·중재하고 입양 대상 아동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권위 있는 국가기관의 신설”로 모아진다. 보고서의 제안대로라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가 마련할 최종 개정안은 연구팀의 제안에 못 미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5월8일 “입양 관리에 대한 정부 기능을 강화하겠지만, ‘헤이그협약’에 준하는 정부기관을 새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허가에 의해 입양이 이뤄지는 ‘유럽 스탠더드’에 대해서도 “현행 민법까지 함께 개정해야 하므로 이번에 바로 입양 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법안 개정은 해외 입양인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일은 홀트아동복지회 등 4개 해외 입양 기관이 1999년 공동으로 설립한 ‘입양정보센터’가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민간기관의 자금에 기반했던 해외 입양인 정보 관리를 정부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정도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정도로는 해외 입양 ‘산업’을 공공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없다.

TRACK 등 해외 입양인 단체와 공익변호사 모임 ‘공감’은 정부와 별도로 관련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7월께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다. 역시 법 개정의 핵심은 모든 입양에 사법적 판단을 거치게 하는 ‘정부 기관’의 설립이다.

 

18살 이전 이중국적 유지하도록

현행 입양특례법은 필요한 서류를 갖춰 보건복지가족부에 제출해 허가를 받는 것으로 입양 심사를 완료한다. ‘허가’라고는 하지만, 민간 입양기관 주도의 입양 절차를 요식적으로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공감’ 등은 권위 있는 국가기구가 입양 절차를 주도하고, 최종 심사는 가정법원 등 사법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절차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친부모와 함께 지내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불가피할 경우, 국내 입양 가정을 적극적으로 찾되 △해외 입양은 최소화하는 등 ‘입양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간 입양기관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하는 것도 이들의 주된 관심이다. 해외 입양 가정이 지급하는 입양알선비와 정부지원금의 기준을 엄밀하게 정해 입양기관들이 ‘금전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입양기관들이 친부모의 정보를 적절한 과정을 거쳐 입양인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해외로 입양된 경우에도 18살이 될 때까지는 이중국적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정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 국적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이 나이까지는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있는데, 유독 해외 입양아의 경우만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박탈하게 돼 있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이중국적 유지를 통해 해외에 입양된 아동이 파양되거나 권리 침해를 당했을 때 한국 정부가 개입하거나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입양과 관련해서는 양부모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조항도 필요하다. 현행 법령에서는 양부모 자격을 △기혼 가정의 25살 이상 부모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한 가정 △아동양육에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가정 등으로 밝히고 있다. 대체로 보아 25살 이상이면 누구나 입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감’ 등에서는 자격 요건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등의 전력이 있다면 입양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지적한다.

‘공감’ 등은 현행법에서 ‘입양될 자격’을 밝힌 대목에 등장하는 ‘요보호 아동’이라는 표현도 삭제해야 한다고 본다. 소라미 변호사는 “입양특례법은 전쟁고아나 부모가 버린 아이 등에게 해외 입양을 ‘강요’하려는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도 ‘요보호 아동’에게만 입양 자격을 부여한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아동의 권리 차원에서 입양될 자격을 어린이 모두에게 부여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경우에도 친부모의 승낙이 없다면 아이를 다른 가정에 입양할 수 없다.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할 아동의 권리가 친부모의 ‘권리 남용’에 의해 완전히 차단당하는 것이다.

두 가정 간 합의에 따라 입양했으나 파양당한 아이의 문제도 있다. 현행 민법은 두 부모의 합의에 의한 입양 절차만 규정하고 있을 뿐, 파양 때 아동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선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 경우 입양아는 양부모는 물론 친부모로부터도 버림받을 수 있다.

양부모에 대한 국가기관 검증도

김상용 중앙대 교수는 5월13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주최하는 토론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양부모에 대한 국가기관의 검증 절차를 거치고 △친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입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아동에겐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입양의 기회를 제공하며 △파양된 경우에도 아동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입양특례법을 국제 기준에 맞게 고치는 것조차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 입양과 관련한 방대한 민법 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난제다. 나라가 법을 만들어 국내외 입양의 풍토를 헤쳤으니 뒤늦게라도 이를 바로잡는 일이 필요한데, 갈 길은 너무 멀고 정부는 여전히 둔감하다. 입양의 상처는 계속 곪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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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게 ‘양육’ 선택권은 없나 [2009.05.13. 제760호]
 
▣ 임지선
 
[표지이야기] 입양부터 권하는 사회복지기관들… 
저소득층 미혼모 월 5만원 지원, 입양 보조비 10만원보다 적어
 
 
“생후 1개월 된 아이를 드립니다.” 

한 입양기관에 입양을 상담하면서 접한 말이다. 이 입양기관은 미혼모가 낳아서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를 바로 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입양기관에서도 호적이 없는 ‘1~3개월’ 된 아기를 주겠다고 했다. 국내 ‘비밀 입양’의 현주소다.

 

 

 
 
» 지난해 미혼모 1056명이 자신의 아이를 국내 입양 보냈다. 해외 입양을 보낸 1114명을 포함하면 지난해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는 2170명이다. 한 미혼모 시설의 풍경.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양육비보다 더 많은 홍보비, 그러나…

 

한국에서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다. 4대 입양기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홍보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입양기관이 국내 입양 아동 1명에게 쏟는 비용의 28%가 홍보비다. 아동 양육비(23%)보다 많은 액수다.

덕분에 국내 입양에 관한 인식이 급격히 개선됐다. ‘국내 입양’은 이제 1980년대부터 비판받아온 ‘해외 입양’의 대안이 됐다. 유명 연예인들도 홍보대사로 적극 나섰다. 많은 부모가 선의를 갖고 입양을 선택했다. 2007년부터는 입양 때 부모가 내던 수수료 220만원도 정부가 대신 입양기관에 지급한다.

하지만 ‘생모와 아이의 분리’라는 기본 구조와 미혼모 문제까지 국내 입양은 해외 입양의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사후관리가 안 되고 파양 때의 대책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입양된 아이는 1306명이다. 이들의 보호자 가운데 518명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이하를 벌었다. 1056명이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였고, 920명이 생후 3개월이 채 못 돼 입양됐다. 이 경우 대부분 양부모의 호적에 바로 출생신고가 된다. 생모와 양부모 모두가 입양 기록이 남길 원치 않아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입양인이 뿌리를 찾거나, 생모가 아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20년 전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에 황아무개(50)씨는 5년 전 국내 입양을 했다. 입양 보낸 아이들을 찾지 못해 애태웠던 마음을 아는 그였다. 아이를 데려온 지 2년 뒤, 황씨는 입양기관에 “아이 부모에게 내 주소를 알려주고 언제든지 오라고 해달라”고 말했다. 입양기관은 펄쩍 뛰었다.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냥 서로 모르는 게 낫다”고 했다. 아이를 뺏긴다는 말에 황씨 마음도 약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아이 생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박아무개(26)씨는 입양을 선택했다가 지난 1년을 눈물로 보냈다. 2008년 3월,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야 했던 그는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을 통해 출산 지원을 받았다. 상담사는 첫 상담에서 입양을 위해 입양 동의서와 친권포기 각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출산일 아침에 박씨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오후에 낳은 딸아이는 입양기관의 임시보호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출산 뒤 아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흘 만에 박씨는 입양기관에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입양기관은 “아이를 데려가려면 아이 아빠와의 관계, 양가 부모의 입장 등을 명확히 하고 그동안 지원한 출산 비용과 아이 위탁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는 생후 2개월이 안 돼 양부모의 품에 안겼다.

민법상 협의 파양 6년 간 4896건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박씨는 아이 아빠와 함께 아이를 키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 찾기에 함께 나섰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민원을 내고 인터넷의 입양 모임에 자신의 사연을 알렸다. 지난 3월 <한겨레>에 보도가 나간 직후 박씨 부부는 아이를 되찾았다. 입양기관을 통해 양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도 좋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입양을 결정하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입양을 번복하는 데는 1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서류상으로 아기는 양부모의 친자다. 아이를 데려오려면 ‘친생자부존재청구소송’을 거쳐야 한다. 박씨 부부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양부모도 상처를 받았다. 결국 1년 가까이 키우던 자식을 뺏겨서다. 충분한 상담과 숙려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입양은 생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신고제인 민법상의 협의 파양이 2001~2006년에 4896건에 달한다. 가정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재판상 파양 사례는 305건이다.

박씨는 “내가 찾아간 입양기관은 단지 입양만 이야기했을 뿐, 양육 지원에 대해선 실질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며 “양육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알았다면 양육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저소득 모자 가정을 일정 기간 보호해 생계를 지원하고 퇴소 뒤 자립 기반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모자보호시설이 전국에 41곳 있다. 이곳에선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고 퇴소 때 정착금으로 200만원이 지원된다. 저소득층 미혼모에겐 한달 5만원의 양육비도 지원된다. 하지만 이는 모든 입양 부모에게 한달에 지급되는 10만원의 양육보조비에도 못 미친다.

어미의 슬픈 눈을 보라

 

전문가들은 입양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머물 수 있는) 미혼모자 시설 25개 중 17개가 입양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입양을 선택한 미혼모만 입소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혼모가 자녀 양육을 할 경우 입양 부모보다 지원금을 적게 받을 이유가 없다”며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경제·사회적 자립 능력의 제고에 초점을 두어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해체에서 출발한다. 아동이 가족과 고향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제 협약에서 명시하는 ‘기본’이다. 미국에 ‘국제 입양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려던 안과 의사 출신 리처드 보아스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 미혼모 지원시설에 들렀다 생각을 바꿨다. 아기를 입양 보냈거나 입양 보낼 준비를 하는 미혼모들의 슬픈 눈을 본 것이다. 그는 현재 국제 입양 지원 사업을 접고 한국에 ‘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어미의 슬픈 눈을 바라보는 것은 복잡한 입양 문제 풀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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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살 돈으로 친엄마를 지원하라 [2009.05.13. 제760호]
 
 
 
[표지이야기] 입양 자체가 없는 유럽은 정부가 미혼모 보살펴…
혈육과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품격 있는 최선의 해법
 
 
정경아(미국 이름 제인 정 트렌카)씨는 생후 6개월 만에 4살 된 친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됐다. 현재 모국에 돌아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의 조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소설가인 그는 2003년 미국에서 자전적 소설 <피의 언어>(The Language of Blood)를 출간했다. 이는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입양에 대한 관점 변화를 촉구하는 그의 영문 기고문을 번역해 싣는다. 편집자 

 

 

 
 
» 한국에 남아 있는 입양인들의 입양 서류. 입양의 첫 단계는 엄마와 그의 소중한 아이를 분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얼마 전, 나는 전남 여수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한국인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노인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의 친구가 예전에 입양 보낸 아들을 찾고 있는데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친부모와 절연된 5살 이하 그리고 ‘아기농장’

 

지금까지 모두 20만여 명의 한국 아이들이 서구 나라들로 입양됐다. 그렇다면 100만 명 정도의 한국인 부모 또는 조부모들이 아이를 잃는 고통을 직접 겪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처럼 친구나 친척의 입양 경험을 간접적으로 겪은 이를 더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입양은 자선이 아니라 사업(business)이다. 입양의 핵심은 돈을 위한 인간의 교환에 있다. 미국인 부부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아이를 입양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만5525달러다. 만일 입양을 진정으로 자선이라 부르려면, 이런 비즈니스적 요소부터 제거돼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공복지 서비스가 그러하듯, 입양 또한 국가에 의해 무료로 운용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입양이 돈 버는 사업으로 전락한 탓에 오늘날에도 매년 1천 명이 넘는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지고 있다. 국제 입양을 조장하면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헤이그협약 등 국제법은 아이들이 제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며, 국제 입양은 최후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양 부모들은 한국 아이들이 친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도울 만큼 충분한 재정적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저 한국 아이들을 데려오기만 한다. 미국 입양 부모가 한국 아이를 입양하는 데 지급하는 돈을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3200여만원에 이른다(1달러당 1260원 기준). 이는 친엄마에게 매달 53만여원을 5년 동안 줄 수 있는 액수다. 이 정도의 돈이면 친엄마가 아이를 직접 보살피면서 함께 지내는 일을 도울 수 있다.

입양 기관들은 미혼모 시설과 관련을 맺어서 아기들이 곧장 친엄마의 품에서 입양 가정으로 옮겨지도록 한다. 입양 사업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상은 합법적 절차를 거쳐 친부모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지워버린 5살 이하의 건강한 어린아이다. 심지어 아기가 엄마의 자궁 안에 있는 동안에도 ‘합법적으로’ 양육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아기농장’(baby farm)이라 불리기도 한다.

 

입양 기다리는 미국 어린이 11만 명

이런 체제는 40~60년 전 미국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대단히 비윤리적이고 강압적으로 엄마로부터 아이를 빼앗아오는 행위로 비판받는다. 데이비드 스몰린이라는 미국 법학 교수는 이런 국제 입양을 “합법화된 어린이 유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사적 기관들에 의해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공공의 사회적 서비스조차도 민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따라, 취약한 한국 엄마들과 부유한 서구 엄마들 사이의 국제 입양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한국 아이들을 미국의 입양 가정에 보내는 일은 미국 아이들을 위해서도 공정하지 못하다. 2005년, 미국 아동복지연맹(The Child Welfare League of America)은 16살 이하의 미국 어린이 가운데 10만9316명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이들이 입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년여에 이른다. 입양을 기다리는 미국 아이들의 대부분은 위탁 가정에서 자라지만, 여전히 8174명이 고아원에서 지내고 있다.

한때 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무한한 부의 땅이라 여기면서 아이들을 보냈다. 정말 그럴까? 2000년대 중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빈곤율(17.1%)은 한국(14.6%)보다 높다. 아동빈곤율 역시 한국(10.7%)보다 미국(20.6%)이 높다.

입양은 의학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입양 아동이 자신의 유전학적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가족 병력에 대한 간단한 질문에도 답변할 수 없다. 게다가 백혈병 같은 질환을 앓는 입양 아동은 자신에게 적합한 골수 기증자를 찾을 수 없어 사망할 수도 있다. 입양 아동은 ‘애착장애’(attachment disorder)에 걸릴 위험도 높다. 이런 장애는 어린 시절 친엄마로부터 떨어졌을 때 생겨나는 정신적 문제로,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전쟁 고아가 사라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오늘날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에겐 이미 ‘가족’이 있다. 엄마와 아이로 이뤄진 ‘한부모’ 가정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입양 자체가 거의 없는데, 정부가 직접 미혼모를 포함한 엄마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기를 수 있도록 북돋고 지원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지위나 처지 때문에 이들을 차별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체성 유지 입양 가정에 인센티브, 친족 지원…

한국은 식민지배와 독재 시기, 급속한 산업화와 세계화 등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런 과거에는 어린이의 권리가 어른의 권리보다 우선시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국은 더 이상 전쟁으로 신음하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민주적 상황의 진전과 함께 한국에 보내는 세계의 기대는 점차 커지고 있다. 자비롭고 선진화된 사회에서는 어른이건 어린이건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다.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입양이 사랑에 기초한 행동이 될 수 있긴 하지만, 입양의 첫 단계는 엄마와 그의 소중한 아이를 분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제기구들은 아이가 친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이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고 (즉, 친부모의 존재를 알도록 하면서) 입양하는 가정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이모·삼촌·조부모 등이 보살피도록 이들 친족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 등도 국제 입양이나 국내 ‘비밀’ 입양보다는 훨씬 나은 대안이다.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은 약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 그 사회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아이들을 친엄마와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품격 있는 최선의 해법이다.

정경아 <피의 언어> 저자·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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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한국 아이 2169만원이오 [2009.05.14. 제760호]
 
▣ 임지선
 
[표지이야기] 홀트인터내셔널에 나와 있는 아기의 가격… 
‘산업화된 입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조하는 나라의 잘못
 
 
언니·오빠들은 동생 린을 싫어했다. 린의 눈은 작았고 머리는 검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린은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세 명의 언니·오빠들은 린을 따돌렸다. 양부모는 린을 학대했다. 1966년 12월, 두 살배기 린이 처음 양부모의 품에 안겼을 때만 해도 사정은 조금 달랐다. 양부모는 자청해 린을 입양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갓난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 “우리 여기 있습니다.” 1966년 8월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한국 입양가족 야유회. 1955~66년에 입양된 아이들이 그룹지어 선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홀트아동복지회 50년사>
 
 
 

 

 

따돌림, 성추행, 가출, 그리고 ‘귀환’

 

그러나 양어머니는 갈수록 린을 차갑게 대했다. 훗날 양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한다. 심약한 그는 린에게 내어줄 모정의 여력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린을 만졌다. 13살이 될 때까지 린에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 어릴 땐 뭔지 몰랐고, 나이 들어서는 알면서도 침묵했다.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주변에는 양아버지를 닮은 백인들뿐이었다. 18살에 집을 나왔다. 10대의 나이로 결혼했지만 5년 뒤 이혼했다.

그는 불행한가?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고립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하는 린 리스(Leanne Leith·44)의 삶에도 소망 하나가 남아 있다. 친부모를 만나는 일이다. 1년 전부터 그는 홀트인터내셔널에 자신의 기록을 요청했다. 미국의 홀트인터내셔널은 “한국에서 받은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에 자료를 모두 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그는 4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결국 입양기관에서 받은 것은 서류 한 장과 사진 한 장뿐이다.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두 살배기 아이가 사진 속에 있다. ‘#4708’이라는 번호가 적혀 있다. 1966년 3월, 강원 원주시 시청 앞에 버려진 아이에게 매겨진 일련번호다. 사진은 미국에 있는 성추행 양아버지와 우울증 양어머니에게 우편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이제는 이 사진을 통해 친부모를 만나야 한다. 한국에 온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진전은 없다. 그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린은 매년 1천여 명씩 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해외 입양 아이들의 미래다. 그들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슬픔과 곡절을 짊어져야 한다. 원래는 어른들 잘못이었다. 감당은 아이들 몫으로 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잘못이다.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21세기에 접어든 2000~2007년에만 1만6970명의 한국 어린이가 해외 입양 가정에 보내졌다.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를 위해 1961년 처음으로 고아입양특례법이 만들어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더 이상 전쟁고아는 없다. 그래도 해외 입양은 여전하다.

지난해 해외 입양된 한국인 아이는 모두 1250명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보면, 1958년 이후 2008년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아이는 모두 16만1558명이다. 이 가운데 67%인 10만8222명이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 다음은 프랑스(1만1165명), 스웨덴(9297명), 덴마크(8702명) 순이다.

미 인구통계국의 2000년 자료를 보면, 미국에 입양돼 온 아이들 가운데 한국 출신이 24%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2위, 러시아가 3위였다. 2000년대 들어 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입양아의 수가 조금 줄었다. ‘세계 최대 어린이 수출국’의 오명은 면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한국은 과테말라, 중국, 러시아, 에티오피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 아이를 입양 보내는 주요 국가다.

여전한 것은 더 있다. 1993년 국제사법회의에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이 만들어졌다. 한국은 협약 제정 15년이 넘도록 가입하지 않고 있다. 헤이그협약은 부당한 국제 입양을 막기 위해 입양을 담당하는 중앙국가기관을 지정하도록 했다. 2009년 2월 현재, 헤이그협약에 가입한 78개국은 모두 해외 입양을 위한 중앙정부기구를 두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유보 상태

 
 
» 연도별 해외 입양아동 수
 
 
 

 

 

한국이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는 미국·캐나다·스웨덴 등 8개 나라다. 이들 역시 헤이그협약에 가입해 있다. 관련 업무를 맡은 중앙정부기관도 물론 있다. 미국은 국무부가 입양을 감독한다. 스웨덴은 중앙국가기관으로 해외입양국(MIA)을 두고 있다. 한국에는 입양 관련 정부기관이 아예 없다.

우리나라는 1989년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지만, 이 가운데 입양 관련 3개 조항에 대해서는 국내 적용을 유보해둔 상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아동의 입양이 관계당국에 의해서만 허가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의 대체 수단이며, 해외 입양이 입양 관계자들에게 금전적 이익을 주는 결과가 되어선 안 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헤이그협약에 가입하고 아동권리협약 유보를 거두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일제 잔재와 군사독재를 청산했지만, 해외 입양은 없애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한국의 ‘고아 수출’을 비난했다. 정부는 처음으로 해외 입양 폐지를 언급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해외 입양인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해외 입양 자체가 ‘나라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지만, 그저 상징적 의미일 뿐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으로 4~5년 뒤 해외 입양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치렛말에 그쳤다. 2005년 2101명이던 해외 입양이 2008년 1250명으로 줄긴 했으나, ‘폐지’와는 거리가 멀다. 감소의 속도를 낙관적으로 봐도 앞으로 10년 이상 해외 입양은 유지될 것이다.

정부의 선언이 번번이 공염불이 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해외 입양은 정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시장’에 맡겨져 있다.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가면 미국 가정이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나와 있다. 1만7215달러(환율 1260원 기준 2169만원)다. ‘입양 시장’에서 한국 아기는 가장 비싸다.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 외국 입양 부모들에게 인기가 좋다. 홈페이지엔 불가리아 아기 1만6천달러, 중국 아기 1만1360달러, 네팔 아기 1만2천달러라고 적혀 있다. 이들 액수는 한 국가가 아동 인권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드러내는 지표로 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등록비, 서류작업 비용, 에스코트 비용 등은 별도다.

 

입양 부모가 내는 돈은 현지 입양기관과 한국 입양기관이 나눠갖는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 입양 부모가 지불한 2천여만원 가운데 800만~1200만원이 우리 쪽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미국 홀트인터내셔널의 몫이다. 입양되기 전까지 고아를 맡아 기르는 비용,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보살피는 비용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오가는 비용이 ‘입양 비즈니스’를 증명”

 

지난해 6월 보건복지가족부가 홀트아동복지회와 대한사회복지회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결과보고서에는 “입양기관이 해외에서 받는 입양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쓰여 있다. 감사 결과 해외 입양 알선 때 대한사회복지회는 미국 1만6천달러(약 2016만원), 캐나다 2만2천캐나다달러(약 2332만원), 스웨덴 1만2천유로(약 1920만원)를,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 1만1천달러(약 1386만원), 유럽 1만700달러(약 1348만원)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기관 쪽도 할 말은 있다.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고, 부모 없는 아이에게 입양할 부모를 찾아주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하며, 국내 입양이면 좋겠지만 아직은 사회 인식이 따라주지 않아 해외 입양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입양기관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받는 비용은 미혼모나 요보호 아동을 돕는 일에 쓰인다”며 “오히려 정부 지원금을 받아야 시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입양인을 돕는 시민단체들의 시선은 다르다. 입양인 지원단체인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해외 입양 과정에서 오가는 비용 자체가 ‘입양 비즈니스’를 입증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적절한 복지를 제공할 의무는 국가에 있다. 그의 부모가 어려운 사정을 겪고 있다면, 이를 도와 아이와 함께 살도록 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현재의 해외 입양은 이런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일체의 비용마저 외국인 가정에 전가하면서 그 대가로 미래의 해외 입양아를 길러내는 식이다.

일단 해외 입양이 결정된 뒤, 어느 나라에 보낼지도 순전히 입양기관에 달려 있다. 입양기관마다 협약을 맺은 나라가 다르다. 현재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룩셈부르크, 동방사회복지회는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대한사회복지회는 미국·스웨덴·캐나다·이탈리아, 한국사회봉사회는 미국과 입양 관련 기관 상호협조를 맺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아이들이 많은 현실을 들여다보면, ‘시장의 논리’가 숨어 있다. 미국은 국무부가 입양을 관장하긴 하지만, 헤이그협약 가입국 가운데 ‘민간’의 입김이 가장 세다.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사설 해외 입양기관들이 미국인 가정에 외국 아동 입양을 권유하는 방식이다. 이 해외 입양 기관들은 미국인 입양 부모로부터 돈을 받는다. 외국 아동에 ‘가격’을 매겨 선전하는 풍토가 여기서 비롯했다. 기왕이면 ‘비싼 값’의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이 입양기관에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의 부모들은 왜 미국 아이 대신 한국 아이를 택할까? 허남순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미국 부모들이 미국인 아이를 입양하려면 관련 법률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만 1만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아이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외국 아이는 잘 키워낼 의욕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아이를 입양하면 비용 대비 만족도가 그나마 가장 높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미혼모 생활시설인 애란원의 강영실 국장은 “미국과 한국의 입양기관이 자체적으로 협약을 맺어 ‘입양 비용’을 책정하는데, 이 비용에 대해 미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있고, 한국 정부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주무 인력도 적어 전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쟁도 없고 대기근도 없고 아이를 수출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무역수지 문제도 없는 나라에서 해외 입양이 여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 입양 업무를 중심으로 짜인 민간 입양기관의 ‘관성’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해외 입양이 계속돼야만 일자리와 월급을 보장받는 어른들이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 미국 거주 해외 입양인 수(2000년)
 
 
 

 

 

 

전쟁고아 줄어든 시점에서 해외 입양 증가

 

국내에서 해외 입양을 전담하는 민간기관은 4곳이다. 1961년 처음으로 고아입양특례법이 만들어지면서 66년부터 72년까지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동방사회복지회 등이 해외 입양기관으로 정부 인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홀트아동복지회의 경우, 2004년 12월 기준으로 입양 관련 사업에만 142명이 일하고 있다. 입양 사업은 11개 지방사무소에서 함께 이뤄진다.

전쟁고아가 사실상 사라진 1970년대 이후의 해외 입양은 미혼모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국내 4곳의 해외 입양기관들은 미혼모 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미혼모 보호시설 25곳 가운데 17곳을 홀트 등 해외 입양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해외 입양인 수는 전쟁고아가 줄어든 시점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1960년대 7275명이던 해외 입양인 수는 입양기관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70년대엔 4만8247명, 1980년대는 6만5321명을 넘어섰다. 입양기관이 자리잡으면서 결과적으로 ‘시장’도 개척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혼모가 늘어난 게 아니라, 미혼모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민간 입양기관의 증가가 해외 입양 아동 증가의 핵심이라고 본다. 입양기관들이 외국에 보낼 수 있는 아기를 ‘물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란 것이다.

<홀트아동복지회 50년사>를 보면, “2005년에는 미국·프랑스 등의 국가를 대상으로 모두 941명의 국외 입양을 계획하고 있으며, 3/4분기에는 모두 668명의 국외 입양이 이뤄져 전체 계획의 70.2%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입양기관들이 해외 입양의 목표치를 세우고 그 실적을 내부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6년 가을, 당시 22살이던 최미은(가명)씨는 임신을 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가출한 그는 늘 정에 굶주렸다. 어울려 다니던 이들에게 마음을 쉽게 줬다. 아이는 해외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쉼터에서 낳았다. 출산 전부터 쉼터의 상담자는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서를 들고 나왔다. 미국에 보내면 영어도 잘하게 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씨는 선선히 국제 입양을 결심했다. 나중에 아이를 맡아 기르겠다는 국내 가정이 나타났다. 그러나 입양기관은 “이미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며 거절했다. 국내 입양 우선의 원칙은 뒤로 미뤄졌다. 최씨의 아이는 돌이 될 무렵 미국에 보내졌다.

최씨는 자신의 아이가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만 안다. 양부모의 나이, 직업, 가족관계, 거주지 등은 전혀 모른다. 양부모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혹시 전과가 있는지, 학력은 어찌 되는지, 입양아를 잘 기를 만큼 경제적 여건은 넉넉한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입양기관은 양부모에 대해선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이를 미국으로 보낸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최씨는 후회하고 있다. 뒤늦게 결혼해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여러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아이를 낳은 뒤에 좀더 심사숙고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입양기관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쉼터에서는 지난해 80명의 미혼모가 출산을 했고 이 가운데 70%가 입양을 선택했다. 쉼터 관계자는 “남자아이의 경우 국내 입양 수요가 없어 대부분 해외로 입양된다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어난 80명의 아이 가운데 절반이 남자아이였다. 적어도 절반 이상이 해외로 입양됐다는 이야기다.

 

법에 포함된 ‘비밀 누설 금지’

 
 
» ‘#4708’이 린 리스로 다시 태어난 1966년의 사진. 린은 이 사진이 찍히기 전 2년간의 삶을 찾고자 한국에 왔다.
 
 
 

 

 

그렇게 한국을 떠난 해외 입양아들은 양부모와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과제를 온전히 혼자 떠안는다. 30년간 스웨덴의 해외 입양인을 치료해온 정신과 전문의 현덕 김 스코글룬드는 입양인들이 심리적 문제를 겪기 쉽다고 진단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별의 상처로 인한 우울증,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주변 시선에 대한 강박관념, 애정관계의 어려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 문제 등이다.

자살을 선택한 입양인들도 있다. 1974년 생후 6개월에 스웨덴에 입양된 프레드리크는 19살에 한국을 찾았다. 8개월간 한국에 머물다가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자살했다. 1993년 6월엔 스위스의 한국 입양인 지윤 엥엘(23)이 “생모를 만나기 위해 이 길을 갑니다”란 메모를 남긴 채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스웨덴에서는 입양인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4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죽음을 택하는 것은 그래도 성인이 된 다음의 일이다. 그전에 입양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파양’이 일어날 경우, 해외 입양아는 국제 미아가 된다. 2006년 네덜란드 외교관 가정에 입양됐던 한국 아이가 홍콩에서 파양돼 국제 미아가 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다행히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다른 입양 부모가 나타났다. 이 사례와 달리,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입양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양부모에게 학대받은 린 리스의 사례를 더하면 ‘정상적으로’ 입양 가정에서 성장하는 경우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해외 입양인들이 끈질기게 ‘뿌리’를 찾으려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들에겐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일이 필생의 과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해외 입양인들의 기록은 입양기관이 쥐고 있다.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에 찾아와 뿌리 찾기를 시도하지만 입양기관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기록에 문제가 있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보면, 1995~2005년 사이 7만6646명의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 들어와 친부모를 찾아나섰지만 성공한 경우는 2113명(2.7%)에 그쳤다.

자료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자료를 제공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업무에 관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비밀 보장으로 입양인 기록 접근은 물론 입양기관 내부의 비리조차 알 수 없게 돼 있다”고 비판했다. 스웨덴으로 입양됐던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는 연구를 통해 “1970년대 초반, 북한이 남한의 ‘고아 수출’을 비난하자 남한이 입양 프로그램 전체를 국가 기밀과 비슷한 것으로 분류해 변형시켰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론 처음부터 민간기관에 맡겨진 입양 사업이 화근이다. 법원이나 관련 정부기관의 승인을 얻어, 아이가 자라 친부모를 찾아갈 수 있는 일은 헤이그협약 가입국에서나 가능하다. 헤이그협약은 “입양 아동이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는 친부모나 양부모의 권리와 상충되는 경우에도 아동의 이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젠가 귀환할 린 리스들

 

자전적 소설 <피의 언어>의 작가인 정경아씨 등 입양인 7명은 지난해 입양 기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정당한 요청에도 공개를 꺼리는 4개 해외 입양기관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했다. 정씨는 “1972년 미국으로 입양되는 과정에서 본래 호적 정보와 고아 호적 및 신상기록이 서로 달랐고 한국어 서류와 영문 서류의 기록도 달랐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는 생모의 동의 없이 입양 절차가 진행되거나 부모가 있는데 미아로 처리된 경우도 있었다. 입양인 서류 공개 여부도 일관성이 없었다. 국민권익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입양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관련 제도 개선도 추진할 예정”이라는 민원처리 결과를 보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도 개선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2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지금 당장 해외 입양이 없어진다 해도 언젠가 ‘귀환’해 과거의 책임을 따질 제2의 린 리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 명의 어린 린 리스는 ‘#4708’의 사진을 들고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해외 입양인 인권 보호 협약

중앙국가기관의 존재 강조

 

해외 입양인의 인권 보호 기준을 제시한 국제 협약은 두 가지다.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과 1993년 ‘‘국가 간 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이하 헤이그협약)이다. 헤이그협약은 현재까지 78개국이 가입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유엔 회원국 중 소말리아와 미국만이 가입하지 않은 가장 보편적인 인권조약이다.

헤이그협약은 우선 ‘아동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각국은 아동이 그 가족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는 조처를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국제 입양은 출신국에서 적절한 가정을 찾지 못한 아동’에게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협약국은 ‘아동의 탈취·매매·거래를 방지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협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국제 입양을 관장하는 ‘중앙국가기관’의 존재다. 입양은 ‘출신국의 권한 있는 국가기관’이 관장하도록 정하고 있다. 중앙국가기관은 입양에 관련된 부당한 재정적 이득을 방지하고 ‘입양 아동의 신원, 입양 가능성, 가족사 등을 포함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국제 입양이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가족과 입양 아동에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또한 중앙국가기관은 아동과 양부모의 사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보관해야 하고 입양 단체로 인가한 곳의 조직 운영이나 재정 상황 등을 감독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입양과 관련된 조항이 있는데, 한국은 협약에 가입하면서 제9조 3항, 제21조(가), 제40조 2항(나) 등의 조항을 유보했다. 제21조(가)의 내용은 ‘아동의 입양은 법에 따라 믿을 만한 정보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하고 ‘관계당국에 의해서만 허가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관계당국은 아동의 신분 상태와 부모·친척 등 관계자들이 입양에 동의했는가를 고려해 입양의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제9조 3항에서는 당사국이 ‘부모의 한쪽이나 양쪽 모두로부터 떨어진 아동이 부모와 관계를 갖고 만남을 유지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1996년과 2003년 한국의 입양에 대한 접근 방식 및 파양 제도에 우려를 표명하며 헤이그협약 비준을 권고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2005월 5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일부 조항 유보를 철회하고 헤이그협약에 가입할 것을 권고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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