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인 진실·화해 찾기 길거리 인형극

 

해외입양인 진실·화해 찾기 길거리 인형극
입양인모임 트랙, ’20만 고아수출’ 국가조사와 혈육찾기 도움 호소
09.05.12 11:10 ㅣ최종 업데이트 09.05.12 11:28  최방식 (bestchoice

▲ ‘입양인의 날’을 기념해 지난 10일 보신각 앞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 주최로 열린 해외입양인 인권찾기 인형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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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모 인형이 해외입양인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핏줄을 떠나보내고 눈물을 삼킨 세월이 얼만지, 엄마 품을 벗어나 차가운 가슴으로 살아온 게 또 얼만지 멍든 가슴의 상처는 언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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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댓 남짓한 이들이 행인에게 스티커와 브로슈어, 그리고 홍보지를 나눠준다. 영락없는 한국인이건만 한글을 잘 못해 영어로 설명한다. 일부는 부담스러워 줄행랑을 친다. 일부는 인형을 훔쳐보며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이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아이 어디로 갔을까?”

 

작은 행사지만 카메라맨이 열댓이 모였다. 이리 저리 자세를 주문해가며 셔터를 눌러댄다. 방송용 이엔지 카메라도 서넛 보인다. 공중파와 뉴스전문 케이블 보도표시가 눈에 띈다. 한쪽에선 행사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또 한 쪽에선 퍼포먼스를 하는 인형을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30여분이 흐르고 목이 타는지 임산부 인형을 쓰고 있던 이가 옷을 들어 올리고 물을 마신다. 중년의 여인이다. 극단 인형의 엄정애(53·여) 대표. 이날 행사장 인형을 기획·제작하고  퍼포먼스를 주도하는 이다. 춘천 인형극단에선 꽤 알려진 디자이너.

 

뭐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입양인의 아픔, 혈육을 떼내야 했던 어미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단다. 꽤 여러 해 전부터 입양인 행사에 몇 번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사용된 인형 중 서넛은 한 달여 전부터 제작했고 나머지는 기존에 있던 걸 활용하고 있단다.

 

▲ 뉴욕에서 온 에이미. 트랙 회원 중 행운을 부여잡은 몇 안되는 여인. 대부분 한국인 부모를 찾지 못했는데 그녀는 몇 해전 찾았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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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입양인 전용수’ 이름표를 달고 취재수첩에 한자 이름까지 써준 미국 입양인 돈 고든 빌씨. 그는 57년 1살의 나이로 미국에 입양된 홀트아동복지 해외입양 1호였다. 아직 부모를 못찾았다는 그는 한국이 좋아 한국 여인과 결혼해 여기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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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인형 퍼포먼스의 디자이너인 춘천 극단 인형 엄정애 대표. 인형엄마인 그녀는 입양아 엄마(미혼모) 연기를 하며 가슴으로 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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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 문제 해결책을 물으니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는 투다. 해외입양인, 사회복지 전문가, 피해 당사자 등이 모여 논의를 해봐야지 않겠냐는 반응. 그래도 꼭 한마디를 당부하자 입을 뗀다. “해외입양을 바로 볼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찾아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엄 대표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누가 아는 체를 해서 보니 트랙 사무총장 대행을 맡은 제인 정 트렌카(정경아)다. 외국인 한 명을 소개시켜줘 보니 외모가 영락없는 서양인.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어 보니 ‘입양인 전용수'(돈 고든 벨)라 쓰여 있다. 취재수첩에 ‘容秀’라고 한자까지 써준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한국전 뒤인 56년 파병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이듬해 다른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는 자신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 입양된 첫 번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아직 못 만났다고.

 

“아버지 혈통은 멕시코계 인디언인데,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전 스페인·멕시코·원주민·미국인·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입니다. 미국에서 사는 게 여러 가지로 편리하죠. 하지만 전 한국이 더 좋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해 지금은 안양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인식이 바뀌는 걸 보면 뿌듯한 마음뿐이죠.”

▲ 유럽에서 온 한국인 해외입양인. 이날 행사장에는 20여명의 해외입양인이 참여해 몸과 마음으로 행사취지를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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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이면 곧 창립 1주년을 맞는 트랙(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의 사무총장 대행을 맡은 제인 정 트렌카.(가운데) 오른쪽이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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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처음 왔다는 스웨덴 한국인 입양인(오른쪽). 두달간 국내에 머룰 계획인 그녀는 행사 내내 비닐로 만든 물고기가 매달린 막대를 흔들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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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정 사무총장 대행이 행사 유인물로 만든 푸른색 시험지가 눈에 띄어 읽어보니 참 재밌다. △강제로 떠나야 했던 한국인 집단은, 조선족·고려인·재일동포… 그리고 누구?(해외입양인) △미국에도 고아가 있을까?(답은 16세 이하 10만여명) △입양을 어찌 볼까?(사랑에서 비롯되지만 엄마와 아이의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님) 한글에 어눌한 그가 밤새워 만든 작품이란다.

 

두어 시간 보신각 앞의 난장이 끝났다. 엄정애씨가 인형을 정리해 먼저 춘천으로 떠났다. 열댓이 남아 나머지 정리를 마치니 신순봉 운영위원이 막걸리 한잔 하러 가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남은 짐을 나눠 들고 삼삼오오 줄지어 거리행진을 했다. 막걸리 집을 찾아.

 

피맛골의 ‘열차집’으로 가려는데 길이 막혀 있다. 이미 헐린 모양.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지금은 헐리고 없는 청진옥(해장국집) 골목을 따라 종로구청 쪽으로 가는 길가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해장국 서너 그릇과 파전 몇 개에 막걸리를 시켜놓고 마주앉으니 반은 낯이 익고 나머지는 생소하다.

 

‘에이미’가 부러운 ‘리엔’

 

스웨덴에서 이 행사를 알고 하루 전 입국해 두 달 휴가를 즐기러 처음 한국을 찾은 입양아와 스웨덴인 남자 친구, 덴마크·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간 입양아로 지금은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들, 뉴욕·시애틀 등 북미지역에서 온 입양아출신들, 그리고 입양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한국인 대학원생 등이 모였다

▲ 트랙의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한분영(왼쪽, 덴마크)씨와 박수웅 조사위원.(오른쪽,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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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신각 앞 행사장에서 두시간 내내 퍼포먼스를 하고 쉴만하니 홍보물을 들고 지나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리엔(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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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입양인 인권향상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마치고 종로 뒷골목 한 식당에 모여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놓고 뒤풀이를 하고 있는 트렉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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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앞에 앉은 에이미는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나이가 좀 어려서 그런지 한국인 엄마를 이미 찾았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첫 만남이 궁금해 물어보니 “너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어머니가 너무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에이미 이야기를 듣고 있던 40대 초반의 리엔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시애틀에서 왔다는 그녀는 부모를 아직 못 찾았다고. 에이미가 어머니를 찾은 것에 대해 “어릴수록 부모를 찾을 확률이 크다”며 “나이가 늘면 늘수록 부모는 살아계실 확률이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들의 이야기에 심취한 기자는 감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그랬다. 트랙 결성 때부터 이들을 쭉 지켜보고 있지만 늘 곤혹스런 것은 그들의 역사를 들을 때다. 값싼 동정을 할 수도,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하니 속만 타들어갈밖에.

 

이제 제발 한국전쟁 이후 생겨난 ’20만 고아수출’의 진상을 밝히고, 이유도 모른 채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다 커 뿌리를 찾아 조국이라고 찾아온 이들의 고통과 지금도 어디선가 숨죽여 수십년의 생채기를 앉고 살아가는 부모의 아픔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고 화해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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